#15. 밥보다 산책, 당신과의 산책을 기다리는 아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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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관리자 [ ID: admin ] [ IP: ] 댓글 0건 조회 3,390회 작성일 18-03-27 23:53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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#15. 밥보다 산책, 당신과의 산책을 기다리는 아이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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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가 사는 동네는 북한산자락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.
부촌으로 알려진 동네다보니 제법 큼지막한 단독주택들이 길가 양옆으로 늘어서 있고,
그 앞을 지나갈 때면 “컹컹”하고 짖는 덩치 큰 강아지를 키우는 집들이 많습니다.

그 중에서도 골목 어귀 왼쪽 두 번째 집 옥상에서
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짖는 하얀 강아지가 요즘 저의 작은 적정거리 중 하나입니다.

 

왜냐면 그 녀석은 365일 항상 그 자리, 땅에서 보면 대문 지붕 옆에 매여 있습니다.
목줄이 길어 보이지도 않습니다.
인구밀도도 낮은 동네다 보니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.

그러니 제 딴엔 사람 발자국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부리나케 담장 위로 목을 내밀고 아는 체를 합니다.

“컹컹”

하고 한두 번 짖다가 행인이 그냥 지나가버리면 사람 가는 쪽으로 고개를 죽 빼고 한참을 쳐다봅니다.

저처럼 어떤 강아지든 눈에 띄면 절대로 그냥 못 지나가는 사람이

“아이구, 애기 거기 있었어? 심심해?”


하고 한마디라도 해줄라치면 꼬리를 흔들어대면 작은 소리로 “끙끙” 합니다.

이름도 모르는 그 녀석이 주인과 산책 나가는 걸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.

덩치가 ‘산만한’ 녀석이 얼마나 답답할까요.
얼마나 주인과 산책을 하고 싶고 넓은 마당에서 공놀이를 하고 싶을까요.

그 녀석이 강아지 때부터 그 집에서 살게 됐는지,
좀 커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습관은 안 들었더라도
본능적으로 얼마나 뛰어다니는 자유를 갈망할까요?


또 주인과 함께 산책을 하며 집 앞을 지나는 다른 강아지들이 얼마나 부러울까요?

한 번은 지나던 길에 대문이 열려 있고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보이길래
“허락하시면 제가 하루 한 번씩 댁의 강아지를 산책시켜도 될까요?” 라고 말할 뻔 했습니다.

오지랖에, 그 집 사정도 잘 모르면서 욕먹을 짓 사서한다 싶어 잘 참고 넘어갔지만,
그 녀석은 오늘도 담장 아래 지나다니는 사람, 강아지를 보며 끙끙거립니다.


 

3년 전까지 제가 다니던 상암동 작은 교회 역시 산기슭에 있었고
거기도 줄에 묶인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.

사람들이 먹고 남긴 잔반으로 키우는 아이였습니다.

주인은 라면과 매콤한 찌개를 좋아하는 아이라며 사료 주는 것을 말렸습니다.
그리고 전혀 산책도 시키지 않았습니다.
주변이 산이고 공원인데 말입니다.
더우나 추우나 보온도 안 되고 그늘도 없는 작은 집에서 묶여 지냈습니다.

아이는 털이 숭숭 빠지고 항상 눈꼽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으며
눈동자에는 희 막 같은 게 덮여 있어서 앞이 잘 안 보이는 것 같았지만
안약도 없었고 병원 치료도 언감생심이었습니다.

일요일마다 예배 끝나고 1시간 이상 근처 하늘공원에서 산책을 시켰는데,

그 아이 정말 좋아했습니다.

윤기 별로 없는 코트였지만 바람에 털 날리면서 뛰고 걷고 먼저 달려가
저를 기다리는 그 녀석은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.
 

1년 정도를 그렇게 매주 일요일 저와 산책하며 잘 지내는 것 같던 그 녀석이
어느 가을날 교회에 가보니 목줄만 남긴 채 보이지 않았습니다.

주중에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죽은 아이는 뒷산에 잘 묻어주었다고 했습니다.
10살이 넘었다고, 살만큼 살았으니 너무 슬퍼말라며 주인이 오히려 저를 위로했습니다.
 

그리고는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. 꼭 그 강아지 때문만은 아니었지만요.
 

동물을 돌보는 방식과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.
제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방식을 비난하면 안 됩니다.

그런데도 왜 번번이 이런 일에 화가 날까요?

키우지 않는 사람, 버리거나 학대하는 사람에 비하면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인데 말이죠.
남의 재산(소유물)에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아야 하는데 제 경우는 알고, 보이는 게 병입니다.
 

그래도 주제넘게 한 마디 하렵니다.

강아지를 키우는 모든 분들,
아무리 바쁘고 삶이 고단하고 힘들어도,

시간이 없더라도 강아지 산책 꼭 시켜주세요.

잠자는 시간을 좀 줄이고 컴퓨팅이나 핸드폰 들여다보는 시간 얼마만 줄이면 가능합니다.
몸에 좋다는 비싼 사료, 수제 간식보다 더 아이들 몸에 좋은 건 사랑하는 주인과 함께하는 산책입니다.

 

글. 월간 <비건> 이향재 편집장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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